의미
머리를 쥐고 먹던 것을 토한다는 말. 즉 머리를 감거나 밥을 먹을 때에 손님이 오면 감던 머리는 쥐고 먹던 밥은 뱉고 바로 나가 마중한다는 뜻. 인재를 구하려고 애씀 또는 식사중에도 손님을 기다리게 하지 않음의 비유
머리를 쥐고 먹던 것을 토한다는 말. 즉 머리를 감거나 밥을 먹을 때에 손님이 오면 감던 머리는 쥐고 먹던 밥은 뱉고 바로 나가 마중한다는 뜻. 인재를 구하려고 애씀 또는 식사중에도 손님을 기다리게 하지 않음의 비유
음과 한자
吐:토할 토. 哺:먹일 포. 握:쥘 악. 髮:머리 발
吐:토할 토. 哺:먹일 포. 握:쥘 악. 髮:머리 발
유래
은(殷)나라를 이어 세워진 주(周)나라는 무왕(武王)에 의해 다스려지면서 혼란한 정세를 점점 회복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무왕이 질병으로 죽게 되자, 나이 어린 성왕(成王)이 제위(帝位)에 오르게 되었고, 천하의 정세는 아직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성왕의 삼촌인 주공(周公) 단(旦)이 대신 국사를 보며 주왕조의 기반을 굳건히 다졌다.
주공은 일찍이 아들 백금이 노(魯)나라 땅에 봉해져 떠나게 되자,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나는 나를 찾아온 현인(賢人)을 극진히 영접하기 위해 식사 때나 머리 감을 때도 입에 먹은 것(哺)을 뱉어내고(吐), 감던 머리(髮)를 움켜쥐고서(握)까지 나와 맞이했다."
여기에서 吐哺握髮이 유래되었는데, 혹은 토포착발(吐哺捉髮: 줄여서 토포(吐哺), 토악(吐握), 악발(握髮) 등으로도 쓰인다.
이것은 주공이 어진 선비를 환영하고 우대했음을 말하며, 나라의 일꾼을 얻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해야 된다는 것이다.
※주공(周公:이름은 단(旦))은 중국 고대 주왕조(周王朝)의 시조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2대 무왕(武王)의 동생입니다. 무왕과 함께 은(殷)왕조의 주왕(紂王)을 쳐서 은왕조를 멸망시키고, 무왕의 아들 성왕(成王)을 도와 섭정(攝政)을 하면서 주왕조의 기초를 확립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또한 봉건제(封建制)를 실시하여 주왕실의 수비(守備)를 공고하게 하는 한편,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를 제정하여 주왕실(周王室) 특유의 제도문물을 완성했던 인물이다.
특히 유가사상(儒家思想)에서 주공(周公)을 성인으로 숭상(崇尙)하는데, 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孔子)는 노(魯)나라의 시조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의 문물제도를 이상으로 삼고 혼란한 세태를 극복해 그의 업적을 재현하려 애썼습니다. 《논어(論語)》〈술이편(述而篇)〉에 "내가 심히 노쇠했구나! 이토록 오랫동안 내 다시 꿈에서 주공을 뵙지 못하는구나.子曰 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라고 할 정도로 주공(周公)에 대한 추앙(推仰)은 공자를 존재하게 된 기반이 되기까지 한다.
[출전]《한시외전(韓詩外傳)》
은(殷)나라를 이어 세워진 주(周)나라는 무왕(武王)에 의해 다스려지면서 혼란한 정세를 점점 회복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무왕이 질병으로 죽게 되자, 나이 어린 성왕(成王)이 제위(帝位)에 오르게 되었고, 천하의 정세는 아직 안정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성왕의 삼촌인 주공(周公) 단(旦)이 대신 국사를 보며 주왕조의 기반을 굳건히 다졌다.
주공은 일찍이 아들 백금이 노(魯)나라 땅에 봉해져 떠나게 되자,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나는 나를 찾아온 현인(賢人)을 극진히 영접하기 위해 식사 때나 머리 감을 때도 입에 먹은 것(哺)을 뱉어내고(吐), 감던 머리(髮)를 움켜쥐고서(握)까지 나와 맞이했다."
여기에서 吐哺握髮이 유래되었는데, 혹은 토포착발(吐哺捉髮: 줄여서 토포(吐哺), 토악(吐握), 악발(握髮) 등으로도 쓰인다.
이것은 주공이 어진 선비를 환영하고 우대했음을 말하며, 나라의 일꾼을 얻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해야 된다는 것이다.
※주공(周公:이름은 단(旦))은 중국 고대 주왕조(周王朝)의 시조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2대 무왕(武王)의 동생입니다. 무왕과 함께 은(殷)왕조의 주왕(紂王)을 쳐서 은왕조를 멸망시키고, 무왕의 아들 성왕(成王)을 도와 섭정(攝政)을 하면서 주왕조의 기초를 확립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또한 봉건제(封建制)를 실시하여 주왕실의 수비(守備)를 공고하게 하는 한편,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를 제정하여 주왕실(周王室) 특유의 제도문물을 완성했던 인물이다.
특히 유가사상(儒家思想)에서 주공(周公)을 성인으로 숭상(崇尙)하는데, 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孔子)는 노(魯)나라의 시조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의 문물제도를 이상으로 삼고 혼란한 세태를 극복해 그의 업적을 재현하려 애썼습니다. 《논어(論語)》〈술이편(述而篇)〉에 "내가 심히 노쇠했구나! 이토록 오랫동안 내 다시 꿈에서 주공을 뵙지 못하는구나.子曰 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라고 할 정도로 주공(周公)에 대한 추앙(推仰)은 공자를 존재하게 된 기반이 되기까지 한다.
[출전]《한시외전(韓詩外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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